Timeful Friends
그러고 보면, 난 언제나 읽고, 그 읽은 내용에 관해 쓰는 일을 긴 시간 실천해왔다. 누가 청탁한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난 언제나 읽는 사람이었고, 그 읽는 행위를 기록해두고 싶은 소박한 욕망이, 2011년 즈음 어느 때인가 피어올라 읽으면 일종의 사적인 서평을 써온 것이다. 그리고, 2019년 봄, 짧은 글이지만 원고료를 받는 서평을 청탁받게 됐다. 간간이 긴 글의 서평을 쓰기도 했지만, 이렇게 연재 형식으로, 쓴 것은 처음. 그것도 다른 독서가들과 함께 서평을 써 나가는 일이 제법 즐겁다. 이전에 내가 사적인 공간에 써왔던 것처럼, 공적인 지면에도 지극히 사적인 서평을 지금도 쓰고 있는 중이다.
『낯선 시간 속으로』|이인성|1983|문학과지성사 1 소설은 시간의 조형물이다. 대담하게도 이렇게 정의하려면, 시간은 감각적 대상으로 점, 선, 면, 양감, 가소성 등을 지니며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다고 전제해야 한다. 최소한 그렇게 상상해야 한다. 섬세한 철학 논증은 나중을 기약하며, 차라리 시간은 소설이라는 조형적 메타포를 통해, 필수 불가결한 허구 장치를 통해, 시·촉각적 구체성을 얻는다고 바꿔 말하자. 시간은 소설의 뼈대와 살을 투과하면서 인간의 감각에 영향을 행사하는 파상 에너지를 증폭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시간을 인식하고, 포합하고, 구부리고, 뭉치고, 절분하고, 배치하고, 놓아 보내며, 이 모든 과제의 완결을 미루며, 그것에 신체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시간의 운동성과 생성파괴력과 대결하며 마침..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작풍을 충실히 따를 정도로 좋아한다는 챈들러의 명성은 이미 김중혁이나 정유정 작가를 통해서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챈들러의 무엇이 작가들로부터 무한 찬사를 받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설령 포크너라 할지라도 챈들러처럼 글을 쓸 수는 없다지. 그런데 내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어서인지, 아직 한 권 밖에 안 읽어서인지 하드보일드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이미 그의 문체의 영향이나 '필립 말로'라는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전형이 이미 우리 시대에는 새로울 것이 없어져 그 오리지널리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겠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묘사와 문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말로의 쿨함은 어쩌면 우리 시대에서는 너무 흔해져 버렸으니;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