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명랑한 밤길 (12)
Timeful Friends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중에서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를 돌과 그 돌을 바수어버리는 나무의 관계로 엮어낸 통찰이 빛나는 이야기. 나무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지만 역설적으로 그 뿌리는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준다. 그렇게 나무와 부처의 얽힌 구백 년, 앙코르. 캄보디아의 노승이 전해준 이들 관계의 내밀한 의미는, 자신을 일방적으로 바수어지는 부처라고만 생각했던 당신이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혹, 당신이 상대방의 나무는 아니었을까? 과연 누가 나무이고 누가 부처인가. 그리고 깨닫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킬 수 밖에 없는 나무와 부처의 관계였다고. 그래서 여행에서 곧 돌아올 당신은 그/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
공선옥이 그려내는 여자들을 사랑한다. 한 개인에게 상처받을 때에나, 역사의 질곡 속에서 상처 입을 때에나, 그녀들은 노래한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실제 한 남자 혹은 남성적 역사의 폭력이 그녀들을 휘감을 때, 그녀들은 노래한다. 노래는 그 자체로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약자의 상징인 그녀들은 또 다른 종류의 약자들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이 짧은 글에서, 연이는 깐쭈와 싸부딘이 부르는 애절한 윤도현의 노래들에 힘입어, 네팔의 설산에 떠오른 달을 함께 보며, 명랑하게, 밤길을 걷는다. 이기적인 남자가 자신을 비참하게 다룬 그 날 밤에도. 창작과 비평, 2005년 가을호. / ,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