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갑과 을의 나라 (5)
Timeful Friends
올해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한 박건웅 작가의 이 책은 1985년, 남영동의 김근태 이야기다. '짐승의 시간'이라는 계시록의 언어는, 실제 김근태가 자신이 당한 고문에 대해 붙인 이름이며,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복잡하게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짐승화된 오늘을 마음에 품고, 엄연한 과거를 기록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어제 녹색당에서 문자가 왔다. 제2롯데월드 임시사용승인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였다. 우리집 근처에 있는 그 제2롯데월드를 오고가는 길에 바라보며 나는 늘 중얼거린다. 괴물같아. 김근태의 시대에는, 독재자의 권력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고 인간을 짐승으로 대했다면, 지금은 자본이라는, 마몬이라는 것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고 짐승으로 대한다. 제2롯데월드가 앗아간 생명만 해도 몇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빼곡한, 정말 영양가 넘치는 책. 드라마 남자 주인공보다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던 잘 생긴 문제의식과 사유에 흠뻑 빠졌다. 기필코 책의 연인이 되게 만들었던 이 책을, 하루 꼬박 읽고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게 자기계발의 역사, 형식, 담론, 주체를 근대성, 구술성, 기독교라는 연관 검색어와 더불어 밝혀낸다. 자기계발서 하나 찾아 읽지 않는 나의 독서목록에도 자기계발적 사상의 위용이 넘친다는 것과 우리네 교회의 역사와 교육 방식, 내용이 자칫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타락한 자기계발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 역시 자기계발의 피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 수 ..
에세이스트 김현진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되, 그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만큼의 내용을 얻지는 못했고, 제목 또한 앨리스 워커의 시 제목이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얼른 이 책을 마치고 앨리스 워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ㅎㅎ 물론, 이 책이 나올 당시 이십대 후반이던 김현진이 또래 여성으로서 그 생활과 경험에 기반한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해주었다는 측면에서 동류 의식 비슷한 위안을 얻었지만, 이 책의 부제인 B급 연애 탈출기에 어울리는 탈출 방법을 깨닫지 못한 것은 나뿐일까? 그래도 그녀가 꿋꿋하고 씩씩하게 계속 시대의 글쓰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조금 더 깊은 인문학적 성찰을 장착하여서. 2009, 레드박스.
술도 안 마시고, 한 여자하고만 살며, 보수성에 있어 수위를 다투는 Y선교단체 출신의 '법'학자가 '욕망'을 말한다. 크크. 책의 띄지에 찍힌 저자 사진에서 체크 무늬 남방을 입음으로 그 정점을 찍는 그의 모범성이 '고백'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욕망의 민낯이란. 참으로 상쾌하도다. 그 수줍고 조심성 많은 태도는 오히려 어떤 종류의 통쾌함을 더욱 극대화하는데 이건 무슨 아이러니? 그 모든 '계'의 특성들이 '색'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다른' 관점의 해석이 원동력이 된다는 게 인상적이다. 기독교 마초 혹은 모범생 기독교 남성에게 추천하고 다니는 책. 2012, 창비.
강준만은 오늘날에 유행어가 되어버린,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권력관계를 20세기 초의 한국 역사에서부터 그 근원을 따져본다. 1부 왜 한국인은 갑을관계에 중독됐나:갑을관계의 역사, 2부 갑을관계 문화가 낳은 사생아:브로커의 역사, 3부 선물은 '가면을 쓴 뇌물'인가:선물의 역사로 앞의 3부에서 먼저는 갑을 중심으로 형성된 권력관계의 긴 역사를 추적하고, 4부 권력자의 갑질에 시달려온 을의 반란:시위의 역사를 결론적으로 선보인 후, 을의 반란은 시대정신임을 강조하며 끝맺는다. 앞의 4부는 그의 본래 방식답게 충실하게 자료들을 섭렵하여 조직하고 해석해내며 논리를 이끌어간다. 그런 후에, 자신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맺음말 부분에서 급격하게 토해내는 방식. 지루하다 싶을만큼 차근차근 그 논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