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예수와 제국 (12)
Timeful Friends
참 사랑스러운 책이다. 을 발표하고 이후에 한 권씩 나니아 연대기를 발표할 때 영미권의 어린이들에게서 엄청난 양의 편지가 날아왔다고 한다. 루이스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을 들여 답장을 썼는데, 타자기를 사용할 줄 몰랐던 그는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썼다. 물론 형 워렌이 타자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답장 사역(?)은 혼자서 하기에 벅찼을 것이다. 그 중에 몇 가지 답장을 모아서 묶은 책인데, 원본은 휘튼 대학의 웨이드 컬렉션과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 어디있는지 알 수 없고 답장만 있다는 것이다. 조앤이라는 미국 소녀와는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고, 메리 윌리스라는 가톨릭을 믿는 미국 아줌마와는 신학과 관련해서 긴 시간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
실망의 늪에 즐겨 빠지는 내가, 삶에서 실망스러운 사람과 상황을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센 강도와 빈도로 그 늪을 건너온 현경이, 그 일들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것을 본다. 쭉쭉 진도 빼던 독서 여정에 슬럼프가 찾아와 며칠간 멍 때리고 있다가 다시 현경을 찾았다. 슬럼프에는, 여성 신학자의 글이 약이다. 내겐 그렇다. 그 다음은 여성 시인의 글이다. 그리고, 다음이 박민규다. 여성 신학자의 글은 영성이 살아있어 신나고, 여성 시인의 글은 말이 살아있어 신나고, 박민규는 그냥 신난다. 셋을 관통하는 것은 통찰, 그래. 통찰의 향연이다. 현경. 그 동그란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 적이 몇 번 있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의 종교란에 십여 년 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 동그란 얼굴. 이 책도..
긴 시간 유진 피터슨을 따라 시편으로 기도했다. 365일로 되어 있지만, 늘 시편으로만 기도한 것은 아니어서, 몇 년이 걸린 것이다. 기도의 언어가 메마를 때마다, 시편을 따라 기도하라는 그의 지도를 따라 조금은 기도 언어의 교정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말이 왜곡되고 모욕당하는 때에 나 역시 그러한 말로 하나님 앞에 이상한 소리들을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며, 이제 복음서를 따라 기도해볼까. Prying with the Psalms:A Year of Daily Prayers and Reflections on te Words of David 1993 by Eugene H. Peterson * 1999, 홍성사. (이철민 옮김)
간명한 책이지만, 자기가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읽었으면 좋겠는 책. 뿌연 시야가 선명해진다. 지금 내가 믿는 복음주의 신앙의 한계와 가능성을 담담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데, 눈에 띄는 통찰은 교회는 '개인'에서 시작한다는 것, 낡은 경영학 이론에 기댄 여전한 성장주의적 성공주의는 교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공동체를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숫자로 집단의 분위기가 왔다갔다 하는 현실을 보면 이런 주장은 귀 기울이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다시, 프로테스탄트하자는 것은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 초기의 정신인 종교의 자유, 만인 제사장적 이해에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할 핵심 개혁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사실 기독교가 벙커 안에서 폐쇄적인 집..
"이사야에게 말이란, 참된 것과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만들어 내는 물감이요 멜로디요 조각칼이라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죄와 악과 반역을 부서뜨리는 망치요 창이요 메스가 되기도 한다. 이사야는 그저 정보만을 전달한 예언자가 아니다. 그는 비전을 창조하고 계시를 전하고 믿음을 세워 준 사람이다. 그는 실로 근본적 의미에서의 시인, 곧 장인이다. 하나님의 현존을 우리 피부에 와 닿게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히브리 민족이 낳은 최고의 예언자요 시인이다." _유진 피터슨, , 이사야 머리말. 응. 메시지로 이사야를 한 호흡에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이 바로 이와 같다. 물기 어린 시어에 담긴 현실 너머의 환상. 하지만 그 환상의 시어는 이사야 전반부에 드러난 현실의 처절한 언어를 기반으로 했기에 더욱 ..
유머, 놀이, 풍자, 농담, 웃음....의 언어 그리고 신학. 지금 나의 가장 큰 화두다. 권정생의 를 신학화하는 작업은 곧 하나님의 유머를 닮은 인간의 언어를 들여다보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작업 가운데 이 책에서 콘라드 하이어스의 비극과 희극 연구는 여러 가지 통찰과 격려를 주었다. 성경을 비장하게, 교리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농담으로 꿰뚫은 관점은 ('긍정의 힘'이 아니라) 삶의 긍정성, 놀이로서의 삶, 해방과 경축을 조명한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희극의 결말과 같은 것. 어린아이가 높은 자가 되고, 거지가 천국에 가며, 초대받지 못한 자가 잔치의 주인공이 되고, 바보가 곧 하나님의 지혜의 담지자가 된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계시록의 결말 역시 잔치로 ..
이 책은 바디우나 아감벤이 추상적/철학적으로 담론화한 바울을, 그 생생한 현장성을 담지한 바울로 재탄생시킨다. 바울과 오늘의 사회-신자유주의 질서 아래의 난민과 유민의 문제를 연결시킨 바디우나 아감벤의 작업을 따르면서도, 성서학자다운 날카로운 깊이로, 그들이 간과한 새로운 성서적 연구 성과물로 더욱 구체적으로 바울의 세계를 그려내는 김진호. (그가 바디우나 아감벤의 성서학적 무지와 무능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는 바울을 알 수 있는 성서 텍스트보다 유럽 철학자가 말한 바울에만 관심갖는 어떤 기독교인들이 생각났다.) 민중신학에서 새로운 의인론(칭의론)을 주창한 김창락의 계보 속에서, 김진호는 한국의 민중신학자와 유럽의 철학자들을 연결해낸다. 성서와 오늘의 도시 서울을 연결하는 작업 역시 독창적이고 놀라운 ..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함께 보기 시작한 책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기본의 힘이다.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은 이미 이십대 초중반에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배우고 논의하고 훈련한 것들이어서 내게는 충분히 익숙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기본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다른 친구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나의 흐트러진 기본기가 다시 잡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훌륭한 운동선수도 가장 기본적인 자세에서부터 뛰어난 역량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의 가장 기본되는 내용을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나누는 일은,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데서 오는 지루함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는 진리의 깊이 그리고 언제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진리를 깨우치는 계기가 된다. 제럴드..
거룩함이란 것이 곧 심각함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나날들이다. 헌신을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비장한 집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적이 있다. 그들의 심각한 얼굴과 비장함의 정서는 '헌신'이란 것이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넘기 힘든 산처럼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그 집단의 그리스도인들은 하향평준화 되는 것 같았다. 권정생은 자신의 유언장을 쓰면서, 먼 나라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걱정하면서도, 유머 한 줄 넣는 감각을 가진 자였는데. 그 유언장을 보며, 깨닫는 것이 많았다. 유머가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상상도 하기 싫다. 결국 유머 한 줄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보지 못하는 날카로움만 간직한 인간이 되리라. 비록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웃는..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 세계관 논의가 한때 명제를 정리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움직여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공저자 마이클 고힌은, 의 숨은 저자였는데, 고힌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세계관적 질문을 이전과 다르게 그러나 연속성을 가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그것은 성경을, 플롯을 가진 하나의 커다란 드라마로 보는 것인데,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으로 마무리되는 성경의 이야기가 곧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메타 내러티브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갑자기 아무 맥락없이, 이 세상에 툭 떨궈진 존재가 아니다. 태초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플롯을 가지고 역동하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