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ful Friends

먹구렁이 기차_권정생.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권정생 연구

먹구렁이 기차_권정생.

paniyn 2013. 11. 25. 13:44

 

 

산토끼
동근이와 아기 소나무들
오소리네 집 꽃밭
찬욱이와 대장의 크리스마스
금희와 아기 물총새
강아지똥
왜가리 식구들의 슬픈 이야기
오누이 지렁이
장대 끝에서 웃는 아이
눈길
먹구렁이 기차

 

권정생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도 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예를 들면, 죽음- 감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강아지똥'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파격적이었던 '똥'이라는 소재를 가감없이 쓰시기도 했다. 책의 앞에는, 이 책에 실린 '강아지똥'을 정본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 실려있다. 그간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했던 것을, 여기에 정리하신 것이다.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에 있는 감나무와의 대화가 있는게 완성본이겠지만, 그 부분은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동화집에도 역시, 아픈 할머니와 사는 동근이, 크리스마스에서도 지하도에서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찬욱이,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금희, 농약을 먹고 죽는 왜가리 식구들, 땅 속에서만 사는 (인간의 시야에서는 감추인) 눈 먼 지렁이 남매, 서커스단에서 일하며 먹고 사는 소녀 난이, 추운 겨울을 넝마주이 아저씨 품에서 나는 아픈 동물들,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기차로 다시 태어나 막힌 곳을 틔우고자 꿈꾸는 먹구렁이 등 힘없고 가난한, (조르주 아감벤의 단어로 표현하면) '벌거벗은 생명'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여러 가지 기독교적 상징을 비틀어 사용한 내용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데,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기독교의 '살림'의 진리를 '죽임'의 진리로, '현실성'을 '내세성'으로 바꾸어버린 제도권 종교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눈길'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온 왕자의 같이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이 땅에 남는 넝마주이 아저씨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현실에 뿌리박은 삶, 죽임을 넘어 살림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진리가 이 고통의 현실 삶에 주는 참된 힘이 아닐까.

 

 우리교육,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