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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문학에 관한 기독교적-탈기독교적 비평_남우희.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권정생 연구

권정생 문학에 관한 기독교적-탈기독교적 비평_남우희.

paniyn 2013. 12. 15. 14:27

"우리에게는 국토분단의 현실이 있고, 우리에게는 공산주에 대한 판단과 결단이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는 통일과 인간성 회복(경우에 따라서 이것은 인간구원의 문제로 심화된다)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시하는 길,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해답을 찾아보는 일, 또한 그러한 문제와 해답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체는 아마도, 정치논설이나 신학논문보다도, 가령 말하자면, 권정생의 동화 같은 데에서 더욱 깊게,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바르게 제시되고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몽실 언니>의 처지와 마음에서 지금 우리의 형편, 처지, 과제 그리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가장 훌륭하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_서남동.

 

민중신학자 서남동이 <민중신학의 탐구>에서 고찰한 위와 같은 문제의식은 나의 생각과 공명한다. 내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성서학적 언어와 교차시킬 수 있을지가 숙제다. 자주 접해보거나 공부해보지 못했지만, 가끔 민중신학의 작업들을 언뜻 마주칠 때마다 놀라는 것은, 한국인인 나의 성서적/신학적 갈증을 앞선 세대의 민중신학자들이 이미 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신학적 환경 속에 거하면서 한 쪽 눈을 가리운 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남우희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초기의 권정생을 기독교적으로 비평하다가, 후기의 권정생을 탈기독교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한 지평은 타당하다. 초기에 기독교 매체들에 기독교 사상을 주로 담아 작업하던 권정생이, 후에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를 실천한 탈기독교적 작업들은 남우희가 썼듯이, 본회퍼에 비견된다.

 

"권정생은 기독교에 실망하면서도 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본회퍼에 공감하였는지는 몰라도, 신 없이 어른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사람 할 도리를 반드시 하는 게 우선이라고, 그게 인간의 임무라고 했다. 이 땅과 이 시간을 고민하면서, 이미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 뿐더러, 더 나아가, 기독교가 있든 없든 신은 아주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를 돌보셨다고 고백하는 경지로 나아갔다. 권정생은 기독교, 동학, 불교보다 더 오랜 원류를 찾아갔다. 그는 어머니의 종교를 찾아내면서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한테는 '우리의 종교'가 있어 왔음을 깨우친 것이다."_105쪽.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말장난이 아니고, 그는 어떤 측면에서 이후의 역사적/제도적 산물인 기독교와는 다른 결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후의 산물인 기독교라는 작은 통 안에 큰 예수를 다 담아낼 수는 없다. 그것과 같이, 권정생 역시 우리 사회에서 상징하는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 다 담아낼 수 없는 근원적 신 사상으로까지 나아갔다. 탈신학/탈기독교를 행해야만, 근원적 하나님을 찾아낼 수 있는 역설을 그는 보여준다. "신학이 성육신하여 문학이 되는"(113쪽) 방식을 통하여.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학 전공, 2013년도 신학석사 학위논문.

남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