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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의 아이_공선옥.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명랑한 밤길

79년의 아이_공선옥.

paniyn 2013. 9. 6. 18:45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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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가진 여자가 밥 먹는 모습은 짠하다. 새끼 밴 어미가 먹는 것을 저 뱃속의 또 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애 가진 여자들한테는 뭐든지, 누구든지 먹을 것을 퍼주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도리다. 그러나 내게는 누구도 밥을 주지 않았다.”(205쪽)

<79년의 아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 구절은 모성의 권리 선언이라 할 만하다. 어미는 세상을 향해 먹을 것을 요구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 그것은 어미가 생명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어미가 그런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는 새끼를 먹여야 한다는 의무에서 온다. 어미의 권리는 새끼에 대한 의무를 전제로 한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79년의 아이>의 주인공 어미는 제 새끼를 부양하지 못했다. 십대 미혼모로서 낳은 아이를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입양시켰던 경험은 권리로서의 모성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킨다. 그의 모성은 성립 불가능한 모성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미 된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이 먼저인지, 그에게 누구도 밥을 주지 않은 사태가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얽혀 있기 십상이다. 이렇듯 당위로서의 모성과 그것을 성립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 사이의 괴리와 긴장 위에 공선옥의 소설은 구축된다.


좌절을 겪은 당위로서의 모성은 아련한 꿈과 소망으로서 흔적을 남긴다. 79년 이후 낳은 두 아이에게서 끊임없이 79년의 아이의 그림자를 보던 여자는 결국 “나도(…)아이를 입양하겠다는”(215쪽) 소망을 품는다._최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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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소중한 보물처럼, 공선옥의 단편들을 아껴서 하나씩 꺼내 읽는다. 그리고 훅 꺼진 마음 상태에 그녀의 글들만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채워진다. 이래서 공지영은 공선옥을 이길 수 없다고 느꼈나보다. 문학 세계에서 누가 누구를 이기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사상> 2007년 10월호. / <명랑한 밤길>,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