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ful Friends
단숨에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껴서 오래 봤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던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구입해서 줄도 긋고 포스트잍도 붙여 가며, 곰곰히, 찬찬히 읽었다. 모험 소설 혹은 성장 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이야기'란 것은 무엇인가,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놀랍도록 참신한 방식으로 던져주는 그야말로 참된 '이.야.기'. 파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벵골 호랑이와 단 둘이, 긴 시간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인내로 227일간 바다를 살아낸 이 이야기를, 고통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의 책이라 할 만하다. 파이가 구명보트 안에서 가졌던 가장 큰 바람은, 심지어 구조되는 것보다 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나 기억이라는 것은 흠씬 얻어맞은 개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홀딱 반했다. 글쓰기 관련 책은, 거의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는데, 그것은 이 책이 애초에 스킬 같은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붙잡는 것이라는 식으로, '내가 알아들을 만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글쓰기의 본질을 알려준 책을 처음 만났다. 나의 글을 써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온다. 두고두고 옆에 끼고 글쓰기가 겁날 때마다 유쾌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겠다. 이 책의 부제는,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이니 만큼. 참, 책 뒷부분에 짧게 붙은 정혜윤의 추천사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 또한 글쓰기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좋은 문장들이니, ..
공선옥이 그려내는 여자들을 사랑한다. 한 개인에게 상처받을 때에나, 역사의 질곡 속에서 상처 입을 때에나, 그녀들은 노래한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실제 한 남자 혹은 남성적 역사의 폭력이 그녀들을 휘감을 때, 그녀들은 노래한다. 노래는 그 자체로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약자의 상징인 그녀들은 또 다른 종류의 약자들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이 짧은 글에서, 연이는 깐쭈와 싸부딘이 부르는 애절한 윤도현의 노래들에 힘입어, 네팔의 설산에 떠오른 달을 함께 보며, 명랑하게, 밤길을 걷는다. 이기적인 남자가 자신을 비참하게 다룬 그 날 밤에도. 창작과 비평, 2005년 가을호. / ,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