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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나_김소연.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강과 나_김소연.

paniyn 2014. 6. 27. 20:58

지금이라고 말해줄게, 강물이 흐르고 있다고, 깊지는 않다고, 작은 배에 작은 노가 있다고, 강을 건널 준비가 다 됐다고 말해줄게,

 

등을 구부려 머리를 감고, 등을 세우고 머리를 빗고, 햇볕에 물기를 말리며 바위에 앉아 있다고 말해줄게, 오리온 자리가 머리 위에 빛나던 밤과 소박한 구름이 해를 가리던 낮에, 지구 건너편 어떤 나라에서 네가 존경하던 큰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나도 들었다고 말해줄게,

 

돌멩이는 동그랗고 풀들은 얌전하다고 말해줄게, 나는 밥을 끊고 담배를 끊고 시간을 끊어버렸다고 말해줄게, 일몰이 몰려오고, 알 수 없는 옛날 노래가 흘러오고, 발가벗은 아이들이 발가벗고, 헤엄치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강가,

 

뿌리를 강물에 담근 교살무화과나무가 뿌리를 강물에 담그고, 퍼덕이는 커다란 물고기가 할아버지의 낚시 항아리에서 쉴 새 없이 퍼덕이고, 이 커다란 물고기를 굽기 위해 조금 후엔 장작을 피울 거라고,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나 있는 이 곳에서, 구불구불한 길에 사는 구불구불한 사람들과 하루 종일 산책을 했다고 말해줄게, 큰 나무 그늘 아래 작은 나무, 가느다란 나무다리 아래 가느다란 나무 교각들이 간신히 쉬고 있다고,

 

멀리서 한 사람이 반찬을 담은 쟁반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다고 말해줄게, 물고기는 바삭바삭하다고, 근사한 냄새가 난다고, 풍겨 온다고, 출렁인다고, 통증처럼 배가 고프다고, 준비가 다 됐다고, 지금이라고, 말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