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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으로 소외감을 막다.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소외감으로 소외감을 막다.

paniyn 2014. 6. 12. 00:07

잡지를 만든다고 모이는 모임의 책임자가 시시각각 보내오는 참여독려문자를 불편한 심정으로 마음 한 켠에 개켜두었는데, 오늘 막상 직접 그 책임자의 책임자와 통화를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더 불편해졌다. 오랜기간 여러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잡지를 좋아하고, 그 형식의 잡스러움을 사랑하는 바이지만, 잡지를 만드는 일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다. 열혈독자지만, 내가 잡지를 만들 마음은 없다는 것. 부질없이 실패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 이미 구술문화가 다시 도래한 듯한 이 세대에, 이미지 인문학을 말하는 시대에, 텍스트 중심이 될 것이 뻔할, 그리고 딱히 고퀄이거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도 못할 주제일 것이 예상되는, 무엇보다 매체 환경에 그다지 감각적이지 못한 누군가들이 이 일을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그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인 것은 인정하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좋은 사람들이기보다, 감각과 안목이 필요한 것 같아서. 무엇보다 협업이라는 것에 회의적이고 무심하며 부적응할 것이 뻔한 나의 태도. 그것이 가장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을 함께 맞춰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함께 맞춰가는 과정 속에 나의 하고 싶은 말은 이미 그 형상을 잃게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뜻뜨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내게, 책임자의 책임자는 말한다. 시작하는 지금부터 참여해야 면이 서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면 들어올 자리가 없을 거라고. 저런. 문제는 그게 아닌데. 여전히 헛다리다. 나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글쟁이면, 함께 해야지, 하시지만, 글쎄다. 이렇게 닫힌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상태에서, 그 안에 들어가면 나는 (그들의 나와 다른 감각과 사유에) 더욱 소외감을 느낄 것 같아 물리적 소외감을 선택하려고 한다. 이이제이도 아니고, 이 소외감으로 저 소외감을 돌려막는 나의 이 초라한 멘탈 혹은 협업 기피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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