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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할아버지_장주식 글+최석운 그림.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권정생 연구

강아지똥 할아버지_장주식 글+최석운 그림.

paniyn 2014. 1. 30. 17:40

 

 

 

"나는 나를 동물 이하로 여기며 살 테야.

짐승들 세상도 얼마든지 아름답거든.

나도 짐승처럼, 먹을 수 있을 땐 체면 없이 먹을 테고,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면 몇 끼라도 굶을 거야."

할아버지가 단단한 결심을 말할 때,

동무는 약간 슬픈 얼굴을 했어.

아니, 기쁜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웃는데,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으니까.

동무는 할아버지 몸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었거든.

내 몸이 아픈 사람은 남이 괴로운 것도 아는 걸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남'을 말이야.

 

*

할아버지는 책을 내는 출판사에 이런 말을 했어.

"내 책을 팔아서 생기는 돈은

나한테 보내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 보내 주세요."

할아버지가 말한 다른 사람이란,

가난하거나 병들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이야.

*

"할아버지 이야기는 너무 슬퍼요."

"웃기는 이야기 좀 써 주세요."

할아버지는 가만가만 대답했지.

"미안합니다. 슬픈 이야기만 써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세상은 살기가 아주 힘든 곳이랍니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이라도 배워야 해요.

그래도 앞으로는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도록 노력할게요."

*

할아버지는 원래 성격이 밝고 우스운 말도 참 잘 했어.

그런데도 슬픈 이야기를 많이 쓴 건,

할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였어.

지구 저쪽 어느 나라에 전쟁이 났다거나

어린아이들이 포탄에 맞아 다쳤다는 기사를 보면

할아버지는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곤 했지.

죽어가는 동물이나 식물을 보면서도 가슴 아파했어.

사람들이 욕심껏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쓰느라

동물들과 식물들 몫을 다 빼앗는다고 말이지.

할아버지는 '나라도 덜 쓰며 살아야겠다' 결심하고,

해진 옷 한 벌도 몇십 년 동안 누덕누덕 기워 입었어.

 

 

**

자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멀리, 웬델 베리에게 갈 것까지도 없이.

안동의 한 종지기 할아버지 안에, 미래가 살아숨쉬고 있었다.

 

 2009,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