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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사기극_이원석.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갑과 을의 나라

거대한 사기극_이원석.

paniyn 2014. 8. 2. 11:47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빼곡한, 정말 영양가 넘치는 책. 드라마 남자 주인공보다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던 잘 생긴 문제의식과 사유에 흠뻑 빠졌다. 기필코 책의 연인이 되게 만들었던 이 책을, 하루 꼬박 읽고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게 자기계발의 역사, 형식, 담론, 주체를 근대성, 구술성, 기독교라는 연관 검색어와 더불어 밝혀낸다. 자기계발서 하나 찾아 읽지 않는 나의 독서목록에도 자기계발적 사상의 위용이 넘친다는 것과 우리네 교회의 역사와 교육 방식, 내용이 자칫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타락한 자기계발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 역시 자기계발의 피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 수 있는 선명한 시야를 제공한다.  

자기계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더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을 누구에게나 필수사항이 되게 만든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무책임성,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 영역을 민영화시키는 합리화이자 체제 순응적 담론으로서의 기능 등이 문제라고 분석하는 부분은 내가 처한 삶의 여러 가지 영역이 정치 사회적 문제의 핵심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의 사회구조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자기 자신만을 주목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에서, 결국 취업 못 하고 집 못 산 것은 모두 너의 게으름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지금 이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집단적으로 더 게으르다거나 무능하다는 것인가? 물론 아니지.

이 자기계발 담론이 얼마나 미국적/개신교적(청교도적) 역사 배경을 깔고 그 깊은 뿌리를 자랑하고 있는지를 캐내는 과정은 저자가 신학과 문화 연구 모두에 학문적 베이스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흡족하고 뿌듯할 지경이었다.ㅋ 그 뿌리를 캐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담론의 타락 지점을 알아보게 만들어, 자기계발에서 건져내야할 것과 버려야할 것을 분별하는 안목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내가 믿는 진리라는 것이 허망한 긍정과 믿음의 변종의 탈을 쓰고 행해지는 설교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슬프고 피로하고 더욱 좌절하는 이유는 넘치는 멘토와 자기계발의 사탕발림 때문이라는 것을, 정말 복음을 전하는 심정으로 말하고프고, 이 책을 꼭 사서 두고두고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야할 책이 있다면 이런 책이다. 늦게 읽을수록 손해. 현재까지, 2014년 내 한 권의 책! 

 

사족. 우연히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동석했던 이원석 님이 <흑집사>를 추천해주셨던 게 생각난다.ㅋ 이 책의 감동을 이어 <보르지아>와 <흑집사>도 정주행해보자.

 

2013, 북바이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