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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_C.S. 루이스.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예수와 제국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_C.S. 루이스.

paniyn 2014. 9. 27. 23:25

참 사랑스러운 책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발표하고 이후에 한 권씩 나니아 연대기를 발표할 때 영미권의 어린이들에게서 엄청난 양의 편지가 날아왔다고 한다. 루이스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을 들여 답장을 썼는데, 타자기를 사용할 줄 몰랐던 그는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썼다. 물론 형 워렌이 타자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답장 사역(?)은 혼자서 하기에 벅찼을 것이다.

그 중에 몇 가지 답장을 모아서 묶은 책인데, 원본은 휘튼 대학의 웨이드 컬렉션과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 어디있는지 알 수 없고 답장만 있다는 것이다. 조앤이라는 미국 소녀와는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고, 메리 윌리스라는 가톨릭을 믿는 미국 아줌마와는 신학과 관련해서 긴 시간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루이스 참 대단하다.

그의 답장들은 한결같이 따뜻하다. 아이들에게 보낸 것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때로 성인이 된 그 아이들에게는 날카롭고도 깊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따뜻하다.

<마법사와 조카>를 헌정한 미국의 8남매와의 관계,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독자들이 풀어낸 알레고리에 대한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는 기독교에 대한 그의 생각 등 그의 글이나 문학에서 다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1944년부터 그가 죽기 전날인 1963년 11월 22일에 보낸 편지까지 수록되어 있는데, 근 20년간 그의 문체가 그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것이 얼핏 느껴져 마지막 편지에서는 마치 가까운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처럼 슬픈 마음이 들었다. 병으로 지치고 노쇠한 가운데에서도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답장을 쓴 그는 참 사랑이 많은 사람 같다. 날카로운 지성의 근저에는 따뜻한 애정이 깔려 있는 참 좋은 할아버지 같은 느낌.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역자 정인영 씨다. 루이스를 정말 사랑하고 책을 통해 그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한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을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문 번역가는 아니지만, 일생에 그의 책을 한 번 번역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일 뿐이지만, 그의 애정어린 번역은 이 책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 마음이 반영된 문장들은 꽃향기같은 느낌을 주었으니까.

번역가의 열정은, 서문을 더글라스 그레셤(루이스의 의붓아들. 그가 사랑했던 Joy의 두 아들 중 둘째)의 글로, 후기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킬머 자매가 보내는 편지>로 채워 그 특별함을 더한다. 킬머 자매는 루이스가 <마법사와 조카>를 헌정한 워싱턴 D.C에 사는 휴, 앤, 놀리, 니콜라스, 마틴, 로저문드, 매튜, 미리암 8남매 중 자매들이다. 이제 막내 미리암마저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실제로 루이스의 답장을 받았던 그리고 책까지 헌정받았던 축복받은 아이들-앤과 놀리와 미리암의 글은 여전히 생기발랄한 회상이 담겨져 있다.

 

읽는 내내,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봤던 책이었다.

 

<옮긴이의 말>

제게는 루이스 교수님과 관련된 인생의 전환점이 세 번 있습니다. 2003년 홍성사의 할인 판매대에서 <순전한 기독교>를 집어 든 것이 첫 번째입니다. 이후 번역된 모든 교수님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루이스 교수님처럼 기독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얘기해 준 사람을 전에는 만나지 못했거든요.

아이들에게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 준 것이 두 번째입니다.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을 찾던 차에 나니아 연대기가 생각났고, 처음엔 무조건 읽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요? 그냥 읽어 주기만 했는데도 아이들은 눈을 떼지 않습니다. 게다가 루이스 교수님께서 다른 책에서 말씀하시던 개념들이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모두 이야기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매해 저는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자료를 찾던 중 교수님께서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출판사에 간곡히 부탁했고 번역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루이스 교수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직접 뵙는 게 인생의 첫 번째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셨고 그의 책을 번역하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쟁쟁한 번역가가 계시고, 번역되지 않은 책도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책이 번역되어 나올 때마다 제 소원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런데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덕분에 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출판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루이스 교수님은 <고통의 문제>를 쓰면서 "의무감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유혹이 되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제게 이 책의 번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혹이었습니다. 터키젤리를 손에 든 에드먼드가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번역하는 동안 억지로 책상에 앉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거의 매번 잠과 식사를 위해 억지로 번역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물론 유혹이었다고 해서 쉬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부분 아이였을 때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데, 루이스 교수님과 1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니 편지의 주제도 깊고 다양해지더군요. 아이들이 교수님께 쓴 편지 내용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페이스북의 나니아 마니아들에게 물어보며 번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이스 교수님의 책은 제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몇 번씩 고쳐 쓰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루이스 교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책을 들고 영국으로 달려가 "저 참 잘 했죠?" 하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사인을 받아 킬른스의 마당을 사방으로 달리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주신다면 같이 산책을 떠나고 싶습니다. 강을 만나면 멱을 감고, 숲이 보이면 탐험을 하겠습니다. 수잔의 활을 들고 나니아의 하얀 수사슴을 사냥하자고 하겠습니다. 아, 얼마나 행복할까요? 얇은 책 한 권 번역하고 마치 전집을 번역한 것처럼 호들갑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집 번역도 부럽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께 루이스 교수님의 책을 번역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담의 아들 정인영에게

아담의 아들아, 너는 참 성실하구나. 너희 반 아이들을 잘 가르치더구나. 난 현재 어떤 아담의 아들의 몸을 빌리고 있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말하려무나. 난 늘 네 곁에 있으니.

 

아슬란이 저희 반 아이의 손을 빌려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에 나와 있듯 저희 반은 아슬란이 늘 함께합니다.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나니아의 오소리 트러플헌터처럼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동물들은 변함이 없어. 한결 같아... 아슬란님을 믿는 만큼이나 굳게 믿어."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며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의 관련 구절을 읽어 준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요? 루이스 교수님이 말한 '기쁨'의 향기와 리피치프가 전하는 '진짜 나니아의 소식이 저희 반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번역을 거의 끝낼 무렵 '이 책에서 나니아의 향기가 나도록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이스가 '장난감 정원'에서 맡았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스크루테이프가 결코 인간에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던 '순수한 의도'를 한번 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추천사를 써주실만한 분께 '나니아의 창조자 아슬란은 그대에게 추천사를 부탁하노라'라는 내용으로 추천사를 부탁했습니다.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생존해 계신 편지 수신자를 수소문했습니다. 아! 아슬란은 두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추천사를 받지 못함으로써 아슬란은 길들여지지 않는 사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킬머 가족과 연결되었고, 그들의 편지와 더불어 옛 편지 원본 사진까지 받음으로써 아슬란이 이 책에 애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 우습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루이스와 어린이들이 편지를 주고받은 일'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킬머 가족의 편지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니 누워 있던 책이 일어나 좌우로 다리를 벌리고는 "빨리 이리 들어와, 나니아로 가는 문이 열렸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책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앤 킬머 힐리스, 놀리 킬머 앤저번, 미리암 A. 킬머 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오역에 빠질 위험에서 구해 주신 번역가 이종태, 홍종락, 노종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세 분의 조언을 듣고 무릎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미국 웨이드센터의 로라 슈미트Laura Schmidt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소한 질문까지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번역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문판 엮은이 중 한 분이신 라일 도싯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주셨습니다. 단 세 줄의 설명으로 막힌 길을 열어주신 강영안 교수님, 영시英詩 관련 번역을 도와주신 신기원, 한형민, 이형화 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저와 함께 나니아 탐험에 푹 빠졌던 광숭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초벌 번역본을 꼼꼼히 읽고 조언을 해준 책벌레 권일한 선생님과 두 딸 민하, 서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나니아에 대한 사랑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나니아 여행>을 집필한 '행복한 수업 만들기'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루이스 교수님의 사생활까지 꿰뚫고 있는 페이스북 클럽 '옷장 속으로Into the Wardrobe'의 회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번역하는 내내 남편과 아빠에게 시간을 내준, 사랑하는 아내 문희와 귀여운 아들 진유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들이 빨리 커서 온 가족이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나니아를 탐험할 날을 고대합니다. 무엇보다 루이스 교수님께 영감을 주시고 제게는 루이스 교수님을 주신, 빛들의 아버지이자 동쪽 바다의 황제, 기쁨의 샘이자 낯선 소식의 발원지이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루이스 교수님과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애정으로 이 책을 집으실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나니아 연대기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내 나라로 통하는 길은 어느 세계에나 있느니라."

 

 

 

LETTERS TO CHILDREN by C.S. Lewis

1985 by C.S. Lewis PTE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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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홍성사. (라일 W 도싯, 마저리 램프 미드 엮음 / 정인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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