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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0권_박시백.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공부하는 삶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0권_박시백.

paniyn 2014. 7. 21. 16:01

 

 

한 작가가 무려 12년에 걸쳐 홀로 <조선왕조실록>과 관련책들을 연구하여 만화화한 조선왕조실록. 완간기념판을 구입해서, 나도 저 사진의 고풍스런 빨간 용무늬 박스의 20권 세트를 받았다.ㅋ 

원본에 충실한 내용에 작가 특유의 해석과 유머를 겸비했으니, 이 정도면 지식 만화로서 꽤 훌륭하지 싶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팟캐스트와 함께 곱씹으니 나름 조선의 역사를 잘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선조 시대 이순신 이야기를 마무리로 전체 20권 중 10권의 반환점을 겨우 돌았는데, 만화여도 역사책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선 중반까지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역시 세종, 이순신 그리고 이이. 세종과 이순신은 이미 충분히 유명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탁월한 인간상들이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추후 더 깊은 독서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일단, 곧 개봉하는 <명량>을 보도록 하자.ㅎㅎ 이순신이라는 성숙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난중일기>를 독서 목록에 올려놓기로 하고.

오만원권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이이는 그동안 잘 몰랐었는데, 인격이나 학문에 있어서 이토록 균형잡힌 인물이 있었다니, 무척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이 같은 사람이 더 오래 살거나, 더 많이 있었다면 분열과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의 정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자신만큼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겠지.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중.일의 얽히고 설킨 오래된 역사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의 뿌리는 역사가 너무나 오래된 것이었다;; 중국의 중화 논리, 일본의 끝없는 야욕, 구한말에는 거기에 더해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이권 다툼까지. 조선 시대의 외교와 전쟁에서 지금 우리 시대가 비춰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은 역사와의 끊임없는 대화인가보다. 다만 전쟁의 목적과 내용, 외교의 수단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조선은 주변 강대국들의 호구가 되기 십상이며, 그런 위치에서 비굴한 외교를 펼치고 혜안 같은 것은 없이 무조건 강대국의 논리에 굴복하기를 앞장서는 인간들이 조정의 주류인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말아먹은 나라라는 것을 살리는 것은, 자발적으로 의병 등을 일으켜 세우는 '그냥' 백성들. 그리고 그들은 늘 정당한 평가를 받기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역적으로 몰리지 않으면 다행인 꼴이다. (지금 정부의 행태 같은 것은 정말 몇 백년은 된 태도라는 점에 소름이 끼침;)

역사는 무서운 것이다. 엄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매 시대마다 새롭게 읽혀져야 한다. 오늘의 시대를 읽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누구나에게. 

한 만화가가 쉽게 풀어 해석한, 때로는 날카롭게 오늘의 현실을 풍자한 이 20권짜리 조선왕조실록. 정말 강추다. 반환점을 돌았으니, 나머지 열 권의 산을 넘을 채비도 해야지.

 

2005-2013,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