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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_마크 롤랜즈.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공부하는 삶

철학자와 늑대_마크 롤랜즈.

paniyn 2014. 3. 20. 21:11

 

 

 

영장류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표출하던 두어명의 인간이 떠오른다.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92쪽)임을 그 특유의 의뭉스러움으로 각인시켜 주었던 그들. 물론 난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영장류적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 영장류적 특성은, 정의 혹은 사역이라는 아니면 하나님 나라,라는 가치로라도 포장되고 실제로 그 그림의 언저리에서 그러한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두루 칭찬받고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기도 한다. 

마크 롤랜즈라는 이 지나치게 매력적인 철학자 아저씨는 이런 말을 한다. "근거,증거,정당화,보장. 정말 사악한 동물들에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불만이 많을수록 더 사악해지고, 화해에 무감할수록 정의는 더욱 필요해진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영장류만이 도덕적 동물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하다."(112쪽).

96%늑대를 만나, 브레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11년간 동거한 이 철학자는 야생의 늑대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배워간다. 둥근 시간을 사는 늑대 같은 종이, 일직선의 시간을 사는 인간이라는 종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비밀은 어마무시한 통찰로 가득하고 다른 종에 대해 겸허한 태도를 가지게 하며 그 여정은 감동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순간, 혹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321쪽)이 인생 최고의 순간일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순간은 우리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이며 이는 곧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매우 끔찍한 순간들을 감내해 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라는 이 책의 (내가 생각한) 주제를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통해 논증해내는 이 대중 철학서는, 늑대와의 동거에서 행복과 절망을 누린 순간들로부터 철학자가 독창적으로 끌어올린 사고들이다. 중간중간 철학자들이 시의적절하게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한 철학서는 아니다. 늑대와의 진한 우정의 기록이랄까.

 

"어느덧 시간은 흘러 그 삶은 막을 내렸다. 적어도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춥고 어두운 1월의 어느 날 밤, 내가 브레닌을 랑그도크에 묻고 하나님을 향한 분노로 거의 죽을 지경으로 술을 퍼마시던 때, 나는 가끔 내가 그날 밤 정말로 죽은 것처럼 느낀다. 데카르트는 길고도 어두운 영혼의 밤을 극복하기 위한 안식을 그를 배신하지 않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았다. 데카르트는 거의 모든 것들을 의심했다. 그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와 그가 소유하고 있는 물리적 신체마저도 의심했으니 말이다. 천부적인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으면서도 그는 수학과 논리학에서 말하는 진실을 의심했다. 하지만 마음이 좋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었다. 충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평가한다면 절대 그를 배신하지 않을 하나님이었다.

데카르트는 아마 이 부분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하나님과 너그러운 하나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좋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그러운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우리를 속이고도 남을 것이다. 삶에서 최고의 순간들은 우리를 너무나도 힘들게 하고 약하게 만든다. 우리 삶의 가치가 오직 순간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드러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외의 방법들로는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적인 개념의 종교인은 아니지만, 가끔 브레닌이 죽은 그날 밤 브레닌의 무덤 앞에 피운 모닥불 너머로 그의 돌 유령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기억난다. 신이 나에게 '마크, 괜찮네. 항상 그렇게 힘들어 할 필요는 없어. 그만 안심하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이야말로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것은 좋은 하나님이 아닌 너그러운 하나님이 어떤 죽은 사람에게 하사하신 엄청나게 아름다운 꿈이 아닌가 하고. 이 하나님은 내가 속고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너그러운 하나님이 하실 행동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분이 내가 죽어 가는 마지막 숨결로 저주하던 그 하나님이시다.

이런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만약 그날 밤 하나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면, 그리고 종이와 펜을 주면서 앞으로 네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면 좋을지 써 보라고 했다면, 이보다 더 이상 잘 쓸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327~328쪽)

 

이 너그러운 하나님이야말로 성경의 하나님의 핵심이 아닐까?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하나님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정말 좋아서 '2014 신입간사훈련'에서도 함께 읽었고, 두 후배와의 비공식 책모임에서도 첫 책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 마음이 많이 들뜨거나 너무 많이 가라앉았을 때, 가만히 마크 롤랜즈와 브레닌의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 영장류의 본질에 너무 깊이 빠져서 바라보지 못하는, 다른 종들이 건네는 삶의 진실과 우주의 비밀에 귀기울이고 눈맞추고 싶다. 비록 나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존재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서 '순간'을 읽어내고 싶으니까.

 

 

THE PHILOSOPHER AND THE WOLF

LESSONS FROM THE WILD ON LOVE, DEATH AND HAPPINESS

Mark Rowland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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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추수밭. (강수희 옮김)-번역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