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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팅 바울_김진호.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예수와 제국

리부팅 바울_김진호.

paniyn 2013. 12. 13. 10:57

이 책은 바디우나 아감벤이 추상적/철학적으로 담론화한 바울을, 그 생생한 현장성을 담지한 바울로 재탄생시킨다. 바울과 오늘의 사회-신자유주의 질서 아래의 난민과 유민의 문제를 연결시킨 바디우나 아감벤의 작업을 따르면서도, 성서학자다운 날카로운 깊이로, 그들이 간과한 새로운 성서적 연구 성과물로 더욱 구체적으로 바울의 세계를 그려내는 김진호. (그가 바디우나 아감벤의 성서학적 무지와 무능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는 바울을 알 수 있는 성서 텍스트보다 유럽 철학자가 말한 바울에만 관심갖는 어떤 기독교인들이 생각났다.) 민중신학에서 새로운 의인론(칭의론)을 주창한 김창락의 계보 속에서, 김진호는 한국의 민중신학자와 유럽의 철학자들을 연결해낸다. 성서와 오늘의 도시 서울을 연결하는 작업 역시 독창적이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국의 신학과 유럽의 철학이 만나는 지점은 후학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리화된 무시간적 바울을 당대의 현실에 뿌리박은 구체적 문제와 씨름한 바울로 읽는 일은, 늘 가슴 한 켠을 답답하게 만들던 성경 읽기가 다른 지평에서도 가능하다는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등을 다룬 각 챕터 마지막마다 각 도시의 구체적 현안과 씨름하던 바울의 관점에서 오늘의 도시 서울의 구체적 문제를 조망한다는 데 있다. 실증적이고 역사비평적인 관념화된 성서 주석 작업이 서양의 오래된 방식이라면, 민중신학은 무엇보다도 '문자' 자체보다 그 일이 일어난 '현장'과 '사건' 자체에 주목한다. 이러한 한국적 실례를 전방위 매체를 통해 가장 실천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제도권 바깥의 성서학자 김진호의 글에서, 내 문제의식과 성서가 만나는 지점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에 대한 소중한 지도를 얻는다.      

 

p.s 어제 2013.12.12에 청파교회에서 있었던, 김기석 목사님과 함께 하는 책 모임 두 번째 시간에 직접 저자 강연을 들었다. 구쌤과 두 학우들과 함께. 그의 성서학적 깊이+인문학적 넓이는 그 곳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같은 결론을 내리게 했다. 공부하자.ㅋ 아, 지금, 여기의 시대를 가슴에 품고 둘러보며.

 

 

2013, 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