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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새해_김연수.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명랑한 밤길

벚꽃 새해_김연수.

paniyn 2014. 6. 11. 00:01

지난 3월, 벚꽃 필 때쯤 읽고,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라는 마음에 잔잔히 압도되어 다시 읽어야지,하고 한동안 간직하였다가 다시 꺼내 읽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201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자와의 대화 이벤트에 김연수를 신청해놓고. 오늘이 발표 날짜였지만, 통보가 오지 않는 걸로 보아 이벤트에 선정되지는 못한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느낌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수선화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김연수를 만나고 싶었는데. 흑.

김연수가 쓰는 단어, 비유, 사물과 장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담백한 문장. 모든 것을 닮고 싶다. 그리고 일상적이라 여겨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시선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아름답게 가꿔주기 때문에, 고맙다.

'벚꽃 새해'는 "본인은 스물아홉 살이라고 우기건만 가족이나 친구들 모두 서른으로 알고 있던 2009년의 봄,"을 중요한 시점으로 설정한다. (그러고보니, 2009년 5월, 봉하마을에 내려가 장문의 유려한 조문을 보낸 김연수의 글을 읽은 게 내 기억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2009년을 그렇게 말하는 성진은 내 친구다. 2012년 12월 19일에서 12월 20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에 전 여자친구 정연에게 선물받은 태그호이어 시계는 멈춰버리고, 네 살 차이의 전 여자친구는 자신이 서른 무렵에 했던 방황을 뒤이어 경험하며 전 남자친구 성진을 이해해버리고 만다.

태그호이어, 그리고 토병. 그 두 가지 매체로 우연히 만난 황학동 정시당의 노인이 그들을 앉혀놓고 해준 아내 이야기 끝에 덧붙인 말. "어쩌다 이런 구석까지 찾아왔대도 그게 둘이서 걸어온 길이라면 절대로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것이라오."

경주 남산과 용문석굴의 목 잘린 불상, 사막에서 목 베인 아내들, 태국 빠이 그리고 아유타야, 홍곡지지, 부산영화제, 주윤발과 임청하의 몽중인, 쏭끄란, 청계천로, 지하철 5호선과 1호선,

이 짧은 이야기에 작가가 세밀하게 조각해놓은 디테일이 허세가 아니라 적실한 매개물로 다가왔을 때 느껴지는 이야기의 아름다운 짜임새는 이 단편을 줄치고 동그라미 치며 읽게 만든다는 사실.ㅎ

 

창작과 비평, 2013 여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013,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