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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_박완서. 본문

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명랑한 밤길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_박완서.

paniyn 2014. 7. 25. 13:55

언젠가부터 내 마음속에 남은 작품 제목이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읽은 것도 아니고, 내용이 궁금한 것도 아닌데, 제목 자체로 내게 많은 정서를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박완서의 단어 선택, 언어 감각, 시선은 그 자체로 내게 와닿는 면이 있다는 것. 굳이 읽어야겠다고 소망한 것도 아닌데, 때가 되어서 내게 도착했다. 이 작품.

이번 도서전에서는 정확히 내가 사려고 한 책만 사야지, 책낭비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굳게 먹고 간 터라, 웬만해서는 내 마음을 끌지 못했었던 책과 책 가격들이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길에 한 번 더 들른 문학동네에서 리퍼브 도서 코너에 이 책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 관심 없는 요리와 여행, 자기 계발 서적(요리와 여행, 자기 계발에 관심없는 게 아니라 요리와 여행, 자기 계발 '책'에 관심없다!) 틈바구니에서 그 품격을 달리하여 홀로 빛나더라는.ㅋ

아무리 리퍼브 도서라지만, 이런 작품에 치루기에는 누추한 값이 매겨진 책을 누가 집을세라 얼른 골라 계산을 마치고 책을 펼쳤더니, 딱, 이 작품이 들어있었다. 다른 권도 아니고 정확히 이 작품이 들어있던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중 5권을 만난 것이다. 아. 기쁘다.

그래서 읽었다. 단편 치고는 조금 길었지만, 박완서 특유의 맛깔스런 시크한 아주머니 문체를 즐기며 재미있게. 그리고 문득 이 단어, '복원'이 어제 100일세월호 참사 그리고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한 단어로 다가왔다. 복원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롭게 지어가는 역사라는 것은 얼마나 힘 빠지는 장난이던가. 작품 속에서는 87년 항쟁 이후, 새롭게 세워진 정부에서 새 역사의 시작이 얼마나 허망하게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복원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지를 한 소설가를 둘러싼 사소한 일들 속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익숙한 일들이라 할지라도, 오늘, 다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으면.

 

 

2013, 문학동네.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5-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