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천 개의 공간에서 놀기 (111)
Timeful Friends
내가 이 아름답고도 선한 책을 만난 것, 우연히 그 신비로운 북토크 밤에 초대된 것, 모두 마술이다. 표지부터 내용, 저자까지 모두 아름다운 이 책은, 그러나 무척 윤리적인 내용이다. 정혜윤은 '무지한 스승'들에게서 삶의 방식을 듣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을 '살게 하는 마술'은 무엇이냐고. 그 날, 단 40명만이 모여 한 방에 겹겹이 둥글게 앉아 이야기 나눌 때,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뿐 아니라 나의 마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다. 물론 수줍은 나는 말하지 못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두어 가지의 이야기를 생각했고, 북토크가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함께 간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건넸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여름밤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따라 살게 된다는 통찰은 오늘도 내가 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빼곡한, 정말 영양가 넘치는 책. 드라마 남자 주인공보다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던 잘 생긴 문제의식과 사유에 흠뻑 빠졌다. 기필코 책의 연인이 되게 만들었던 이 책을, 하루 꼬박 읽고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게 자기계발의 역사, 형식, 담론, 주체를 근대성, 구술성, 기독교라는 연관 검색어와 더불어 밝혀낸다. 자기계발서 하나 찾아 읽지 않는 나의 독서목록에도 자기계발적 사상의 위용이 넘친다는 것과 우리네 교회의 역사와 교육 방식, 내용이 자칫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타락한 자기계발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 역시 자기계발의 피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 수 ..
6월16일, 지역 생활협동조합 모임에 참석했다. 사회자가 “오늘이 세월호 사건 두 달째”라며 묵념을 제안했다. 묵념 후엔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70명의 참석자들은 “선거, 월드컵…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더욱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요즘 흔히 듣는 얘기다. 12년 전의 기시감. 2002년 한·일월드컵과 미군 장갑차, 브라질월드컵과 세월호가 함께 떠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전 승리 후 온 나라가 흥분해 있을 때 경기 양주시에서 미 2사단의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갓길을 걸어가던 중학교 2학년 신효순, 심미선 학생의 몸을 깔고 지나갔다. 세월호만큼이나 이 참사도 예고된 것이었다. 장갑차가 도로 폭보다 컸기 때문이다. 도로보다 큰 장갑차에서 보행자가 보일 리 없..
에세이스트 김현진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되, 그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만큼의 내용을 얻지는 못했고, 제목 또한 앨리스 워커의 시 제목이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얼른 이 책을 마치고 앨리스 워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ㅎㅎ 물론, 이 책이 나올 당시 이십대 후반이던 김현진이 또래 여성으로서 그 생활과 경험에 기반한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해주었다는 측면에서 동류 의식 비슷한 위안을 얻었지만, 이 책의 부제인 B급 연애 탈출기에 어울리는 탈출 방법을 깨닫지 못한 것은 나뿐일까? 그래도 그녀가 꿋꿋하고 씩씩하게 계속 시대의 글쓰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조금 더 깊은 인문학적 성찰을 장착하여서. 2009, 레드박스.
이 글들 안에 담긴 온기어린 정신적 가치 때문에, 아주 조금씩 아껴서 읽었다. 끝내기가 싫어서. 아끼는 책,의 목록 수위에 올라있다. 헬렌 니어링이나 웬델 베리도 좋겠지만, 같은 땅의 권정생을 먼저 읽어도 좋겠다. 그의 수기, 에세이, 시, 편지 등에 담긴 풍요롭고 독창적인 정신 세계. 그것은 '오물덩이' 같은 삶에서 끌어올린 것이기에,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다. 2012, 창비.
유키에, 고마워. 사랑받는 것에 목마르던 한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줘서. 그 배경이 된 (조금 밉지만) 이사오와 구마모토, 아, 구마모토! 너희 둘도 고마워.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담은 4컷 만화, 여러 날의 묵상을 마치고. JIGYAKU NO UTA by Yoshiie Gouda Originally published in Japan in 2007 by TAKE SHOBO PUBLISHING CO., LTD. * 2009, 세미콜론. (송치민 옮김)
언젠가부터 내 마음속에 남은 작품 제목이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읽은 것도 아니고, 내용이 궁금한 것도 아닌데, 제목 자체로 내게 많은 정서를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박완서의 단어 선택, 언어 감각, 시선은 그 자체로 내게 와닿는 면이 있다는 것. 굳이 읽어야겠다고 소망한 것도 아닌데, 때가 되어서 내게 도착했다. 이 작품. 이번 도서전에서는 정확히 내가 사려고 한 책만 사야지, 책낭비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굳게 먹고 간 터라, 웬만해서는 내 마음을 끌지 못했었던 책과 책 가격들이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길에 한 번 더 들른 문학동네에서 리퍼브 도서 코너에 이 책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 관심 없는 요리와 여행, 자기 계발 서적(요리와 여행, 자기 계발에 관심없는 게 아니라 요..
한 작가가 무려 12년에 걸쳐 홀로 과 관련책들을 연구하여 만화화한 조선왕조실록. 완간기념판을 구입해서, 나도 저 사진의 고풍스런 빨간 용무늬 박스의 20권 세트를 받았다.ㅋ 원본에 충실한 내용에 작가 특유의 해석과 유머를 겸비했으니, 이 정도면 지식 만화로서 꽤 훌륭하지 싶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팟캐스트와 함께 곱씹으니 나름 조선의 역사를 잘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선조 시대 이순신 이야기를 마무리로 전체 20권 중 10권의 반환점을 겨우 돌았는데, 만화여도 역사책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선 중반까지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역시 세종, 이순신 그리고 이이. 세종과 이순신은 이미 충분히 유명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탁월한 인간상들이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추후 더 깊은 독서를 하고 싶은..
용산구청 가람홀에서, 공익법센터 어필ing 토크콘서트. 처음에는 '난민'이라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은 무엇일까, 홍순관님의 영감어린 노래를 듣고자, 가벼운 마음에 갔는데... 콘서트장에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난센여권 만들기 컬러명의 독특함과 고르는 재미에 호응 한가득.ㅎ 서울 각 지역에 작품전시를 여행하듯 갈 수 있는 난센여권. 서서 막 써서 글씨가 엉망.ㅋㅋ 내가 좋아하는 연두색 관련한 컬러를 골랐다. 함께 간 은지는, 뒷모습만 찍혔음ㅋ; 2주만에 다시 홍순관님~ 평화, 인권과 가장 어울리는 음악인 아닐까. 노래와 사회가 다 되는 일당백, 뮤지션 홍순관 사회. 이야기 손님, 김종철 변호사님과 난민 욤비 토나씨. 욤비의 이야기, 그에 매료되어 공익법센터 어필을 만든 김종철 변호사, 그들의 이야기는 정..
간명한 책이지만, 자기가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읽었으면 좋겠는 책. 뿌연 시야가 선명해진다. 지금 내가 믿는 복음주의 신앙의 한계와 가능성을 담담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데, 눈에 띄는 통찰은 교회는 '개인'에서 시작한다는 것, 낡은 경영학 이론에 기댄 여전한 성장주의적 성공주의는 교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공동체를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숫자로 집단의 분위기가 왔다갔다 하는 현실을 보면 이런 주장은 귀 기울이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다시, 프로테스탄트하자는 것은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 초기의 정신인 종교의 자유, 만인 제사장적 이해에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할 핵심 개혁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사실 기독교가 벙커 안에서 폐쇄적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