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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ful Friends
잡지를 만든다고 모이는 모임의 책임자가 시시각각 보내오는 참여독려문자를 불편한 심정으로 마음 한 켠에 개켜두었는데, 오늘 막상 직접 그 책임자의 책임자와 통화를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더 불편해졌다. 오랜기간 여러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잡지를 좋아하고, 그 형식의 잡스러움을 사랑하는 바이지만, 잡지를 만드는 일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다. 열혈독자지만, 내가 잡지를 만들 마음은 없다는 것. 부질없이 실패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 이미 구술문화가 다시 도래한 듯한 이 세대에, 이미지 인문학을 말하는 시대에, 텍스트 중심이 될 것이 뻔할, 그리고 딱히 고퀄이거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도 못할 주제일 것이 예상되는, 무엇보다 매체 환경에 그다지 감각적이지 못한 누군가들이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지난 3월, 벚꽃 필 때쯤 읽고,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라는 마음에 잔잔히 압도되어 다시 읽어야지,하고 한동안 간직하였다가 다시 꺼내 읽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201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자와의 대화 이벤트에 김연수를 신청해놓고. 오늘이 발표 날짜였지만, 통보가 오지 않는 걸로 보아 이벤트에 선정되지는 못한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느낌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수선화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김연수를 만나고 싶었는데. 흑. 김연수가 쓰는 단어, 비유, 사물과 장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담백한 문장. 모든 것을 닮고 싶다. 그리고 일상적이라 여겨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시선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아름답게 가꿔주기 때문에, 고맙다. '벚꽃 새해'는 "본인은 스물아홉 살이라고 우기..
대학원 졸업시험을 준비할 때, 생태여성주의 관점으로 언어를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고든 카우프만을 만났다. 카우프만은,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는 군국주의나 도피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지구의 운명을 위해 요구되는 인간의 책임성에 대해서는 관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가 개혁주의 신앙에서 때때로 무력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통찰이었다. 하나님의 진리가 인간에 반하여 대자적으로 독립성과 객관성을 갖는다는 도식은 결국 특정 시대의 사유와 관점으로 대상화된 하나님 개념을 우상화하는 지경으로 빠져드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카우프만은 '있음의 질서'와 '앎의 순서'를 구별하여 1차 신학과 2차 신학 과정을 구분하고, 전통적 신학 작업이 "있음이 있음 그 자체대로 읊어질 수 있다"..
에서 압도당한 정유정의 서사를 되짚어 가고 있다. 과연 이 책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 맞는 것인가. 나는 기꺼이 정유정빠가 되겠다. 지난 여름에 읽은 의 여운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꿈틀거리는데, 이 책 의 승민과 수명은 이제 의 재형, 링고, 스타, 윤주가 들어앉아 똬리를 틀고 있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비집고 들어와 같이 살림을 차릴 기세다. 지금 영화화 되고 있다는데, 정말 이보다 정확할 수 없는 캐스팅에 정유정빠로서 마음이 흡족. 무엇보다 어떤 캐릭터보다 독보적인 매력과 강렬함을 겸비한 류승민, 그 녀석이 배우 이민기의 얼굴로 새겨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ㅋ 정유정의 소설이 그려내는 일종의 구원자 혹은 삶의 윤리적 모델이 서재형이었다면, 삶의 미학적 모델은 류승민이 아닐까. 승민은 도널드 밀러의 ..
비가 오는 날이어서인지, 월경의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호르몬 상태의 불균형을 느끼며, 머리를 올리고 책상 의자에 앉았다. 입식 책상과 의자를 좌식으로 바꿀 계획을 갖고 있다. 나의 계획은 긴 로딩 시간을 갖고 있기에, 언제 그 일을 실행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입식이 좌식으로 바뀐다고 하여, 내 여름, 슬럼프가 무사히 지나가겠냐마는 그래도 일말의 계획을 품어본다. 여름에는 정신이 빠르게 돌아가지를 않는다. 밥맛 떨어지듯, 글에 대한 욕구가 여러모로 부실해지는 때를 나는 슬럼프라고 부른다. 특별히 나를 끌어당기는 작가나 책도 잘 생기지 않고, 나 또한 어느 정도의 논리성을 지닌 글을 쓰는 일에 애를 먹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어떤 계기가 없어도 꿈이 부풀어오르고 활자가 생기있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역시 이동진의 빨책이 가진 위력이란. 요근래 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보이는 것을 보면.ㅎㅎ 김중혁의 강력한 낚시에 기꺼이 낚여 이 두껍고 어려운 책을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었다. 지루하고 어렵고 불편한 긴장을 감내하며 읽어나가다 중간 이후 잠깐씩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던 이 이야기의 예기치 못한 방향, 도덕적으로 천진하며 자기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착각한 열 세 살 브리오니로 비롯한 세실리아와 로비의 (...... 어떤 단어로 지칭하기 어렵다.) 불행, 아니,'사랑'. 그래, '사랑'. 이루지 못한, 순간의 관능과 애틋함, 그리움이 대부분이었을 사랑. 그 배경을 이루는 전쟁이라는 시대의 격랑은 이 소설의 장중함을 더하는데, 한 개인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듯한 사랑조차 그것이 얼마나 시대와 긴밀하게 ..
내친김에 박민규의 첫 소설을 집었다. 원래는 을 빌리러 갔었는데 그 자리에 떡하니 이 있네? (하나도 아니고 두 번째 도서관에서도 은 분명 '열람비치'였으나 제자리에 없었다! 무슨 일임. 아...정말 보고 싶다. .) 삼미 바로 직전이자 박민규의 신인상 수상작이기도 한 은 삼미와 그 문제의식을 같이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 그것이다. "처음엔 강제가 아닌 줄 알았는데, 맙소사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미국 현지에서 공부하고, 대학까지 나온 인재들도 요즘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졸업장이니 뭐니 그런 것이 나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늘 그런 식이다. 말인즉슨,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시스템이다. 저질이다."(157쪽) 그것이 한국의 시스템이다. 저질이다. 이..
냉소와 순수의 원형, 홀든 콜필드를 왜 이제서야 만난 것일까. 물론 지금의 내가 열 여섯 홀든의 정처없는 방황의 마음을 온통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절벽의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실패충만한 어리석은 꿈을 꾼다는 면에서 나는 여전히 그와 같은 방황을 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센트럴 파크 연못에 있는 오리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나도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차창을 내다보던 삶의 어느 순간, 내가 아직도 답이 없는 질문 앞에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면 나조차도 당혹스러운 그런. 십대의 전유물인 것만 같은 그런 상태의 주변을 왜 내 마음은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사실 모두 ..
6-7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몇몇 후배 간사들과의 책모임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문학을 정해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난 4월의 책은 바로 이 이었다. 물론, 내가 정한 책이다.^^ 2003년에 나온 이 책을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 날선 주제 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대로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민낯이 더 포악하게 우리 삶을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 미국이 프랜차이즈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프로'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인간성 말살, '중산층'의 탄생 등. 아, 이런 재미없는 단어들을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전설의 야구팀을 통해 미친 유머의 문체로 비판한다. '지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와 ..
가령, 이런 부분. 아, 노예 이탈리아여, 고통의 여인숙이여, 거대한 폭풍우 속에 사공없는 배여, _연옥 제6곡 76-77행. 형제여, 세상은 장님인데 그대는 분명 거기서 왔군요. 살아 있는 그대들은 온갖 이유를 저 위 하늘로 돌리지요. 마치 거기에서 모든 것을 필연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오.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의 자유 의지가 소멸하고, 선에 대한 행복이나 악에 대한 형벌에 정의가 없어질 것이오. 하늘은 그대들을 움직이게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아니고, 만약 그렇다 해도, 그대들에게 선과 악을 구별하는 등불과 자유 의지가 주어지니, 그것은 비록 하늘과의 첫 싸움에서 힘들더라도, 잘 길러 놓으면 결국 모든 것을 이깁니다. 그대들은 더 큰 힘과 더 나은 본성에 자유롭게 종속되고 그것이 그대들의 마음을 만..